독서기록장/소설
-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독서기록장/소설 2022. 11. 21. 21:37
인간의 정신성과 인간다움은 한탸와 함께 끝나게 되는 것일까? 만사가 무의미를 드러내는 이 암울하고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역설적인 따스함과 평화의 숨결이 전해지는 이유는 뭘까? 세상의 축소판인 압축기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짓이겨놓을 때도 그 안에서 궁극적으로 최상의 것이 탄생하리라는 믿음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한때의 불꽃이었고 사랑이었던 여자의 이름,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이름이 계시처럼 떠오른다. ------------------------------- 이 작품을 규정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자유나 저항 같은 거창한 단어보다 '연민'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도처에 허무가 널려 있어도 삶은 자체의 생명력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불가항력적이면서 매력적인 것임을 흐라발은 우리..
-
2022 제13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독서기록장/소설 2022. 11. 16. 15:36
김멜라 | 저녁놀 서로 사랑하는 여성 둘의 삶의 방식과 생활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이며 합법적이지는 않지만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간난하고 힘겨운 그들의 거처문제나 경제적 문제들을 낱낱이 파헤치지는 않으면서 감정의 깊이와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서 누구나 느꼈을 법한 그러나 이성관계가 아닌 동성끼리의 사랑에서 '여성들이 바라는 性생활'이란 게 진정 어떤 것인지 잘 설명해주는 소설이다. 여성의 이름은 별칭으로 나타난다. 눈점과 먹점. 서로가 서로를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둘은 성기구를 구입하나 바로 서랍장 안에 처박아버리고, 그저 '보관되어 버리는 물품'으로 전락한 '나'가 서로 사랑하는 여성의 애정의 깊이를 관찰한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처음 연애를 하고 사랑을 했던 경험과 첫..
-
최진영, 이제야 언니에게독서기록장/소설 2022. 11. 9. 20:55
솔직히 이 책은 실망스러웠다. 한마디로. 이제야라는 말을 이름으로 쓸 줄 누가 알았으랴. 나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33살 되던 해에 하늘로 갔다. 스스로 갔다. 십 년을 마음 고생하고 고생만 하고 갔다. 나는 올해 쉰이다. 그 때 나의 나이가 31살이었으니 거의 이십 년이 다 되어 온다. 그날의 슬픔이라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건 슬픔이 아니라 살아있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끝없이 내리는 눈을 어쩌지 못하고 바라만 보았던 피의자로서의 시간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 소설은 그냥 장난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시린 가슴을 어루만져줄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삶의 값을 처절하게 깎아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더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는 않으나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던 구절만 여기에 적는다. 표지..
-
서이제, 0%를 향하여독서기록장/소설 2022. 11. 1. 23:34
작은 책을 좋아한다. 작고 가벼워서 손 안에 들어오며 출퇴근 가방에도 무람없이 들어가는 책. 소설 보다는 그런 책이라서 골라 보게 되었다. 단편 소설 세 편과 그 뒤에는 작가와의 인터뷰가 실린다. 인터뷰까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소설에서 작가가 무얼 말하려고 하는지가 궁금해 고르게 된다. 이 책을 읽은 지는 꽤 되었다. 주로 신간은 가장 핫할 때 읽어야 그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 《0%를 향하여》는 읽다가 발췌해둔 부분이 있어서 여기에 기록해 둔다. 적어둔 종이는 언젠가는 없어질테니까. 소장하고 있는 이 소설책도 책장 속에서 빛이 바래 오래되면 언젠가는 사라질 테니까. 이 소설은 독립영화감독인 주인공이 써내려간 일기같은 글이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생기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
-
루쉰, 고독자독서기록장/소설 2022. 10. 10. 12:45
지은이 : 루쉰 판화 : 자오예넨 옮긴이 : 이옥연 펴낸이 : 염현숙 출판사 : 문학동네 출판연도 : 2020.2.28. 페이지수 : 190p(연보 포함) 차례 복을 비는 제사 7 비누 37 장명등 57 가오 선생 75 고독자 93 애도 131 이혼 165 그녀는 자기의 슬픔이 여러 날 동안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저작되어 진작에 찌꺼기가 되었으며 다들 지겨워 뱉어내고 싶어한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웃음에서 뭔가 싸늘하고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그녀는 스스로 더이상 입을 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그저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대꾸도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복을비는 제사」 中 루쉰의 책은 처음 읽었다. 아니 중국 작가의 책이 처음이다. 고독자라는 제목으로 ..